[서평] 크래프톤 웨이: 배틀그라운드 신화를 만든 10년의 도전

올해가 시작되고 3일이 지났을 때 김창한(현 크래프톤 대표이사)의 eo 인터뷰를 봤던 기억이 난다. 김창한 PD가 경쟁이 안되겠다 싶어 CD(기획자)에서 PD(프로듀서)로 전향한 이야기가 나에게 와닿았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굳이 내가 남들이 하고 싶은 일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앞으로 연구를 하면서 이후에 어떤 방향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된 인터뷰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1월 말에 크래프톤 웨이가 자신이 2021년에 읽었던 책 중에서 제일 좋았다~라는 리뷰를 어디선가 보았다. 좋은 책이라는 추천도 받고, 연초에 본 인터뷰 영상에서 동기부여도 받았겠다, 바로 구매해서 읽자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책을 훑어볼 때 줄 간격이 넓고 가로 폭이 좁다는 느낌을 받아서 금방 읽을 줄 알았다. 하지만 540쪽 정도 되는 책이다 보니까 일주일 동안 꾸역꾸역 읽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용이 조금 지루한 편이다. 초반 300쪽까지는 배틀그라운드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테라 이야기만 주구장창 나오고, 500쪽이 다 돼서야 배틀그라운드가 드디어 출시되게 되는 전개가 이어진다.

크래프톤이 코스피에 상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2017년 이후에 매출과 영업이익을 봤던 적이 있다. 전형적인 우상향의 ideal한 그래프를 보고 나는 크래프톤이 내실이 단단한 회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책을 봤지만, 책에선 주구장창 망하는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망할 뻔하다가 배그로 구사일생한). 배틀그라운드는 "체계적인 게임 개발과 그것을 성공적으로 상업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회사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크래프톤 웨이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주먹구구식으로 땜질하고 또 땜질하여 너덜너덜한 누더기에 가까운 회사"에 대한 책이다.

사실 망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자주 참고하는) 사람이기에 오히려 좋았다.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으로 직원을 짤리는 이야기, 능력 있는 직원이 갈수록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야기, 당장 부족한 인원으로 팀을 꾸려야 하는 이야기, 그런 팀과 소통하여 이끌어 갈 수 있는 이야기,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는 이야기들 등등을 좋아한다. 종종 유튜브에 투자 실패의 경험담(쫄딱 망한 이야기 위주로)을 검색해서 보기도 한다.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나에게 경각심, 교훈,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인사이트를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드물기에, 당사자들도 말하길 꺼려 한다(그렇기에 귀하다). 나 또한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고는 하나, 경험이 0에 가까운 고졸이기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할 확률이 아주 높다. 그럼에도 망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성공을 다루는 이야기에서는 다루지 않는 감정을 다루기 때문인 것 같다. 처철한 고통만이 전달해 주는 간절하고 절박한 메시지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인가 싶다.

특히 2016년, 2017년 파트에서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잇따라서 게임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줄지어 퇴사자가 나오고, 내부에선 정치와 분열이 일어나고, 직원들에게 줄 월급도 2개월분 밖에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배틀그라운드는 마일스톤을 하나씩 하나씩 달성해가고 있었다. 심지어 배틀그라운드마저 출시 직전까지 수많은 갈등과 내부 견제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특히 개인 재산을 담보로 잡아 자금을 수혈할 방법도 끊긴 상황에서 구조조정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괴로움을 호소한 장병규, 배틀그라운드가 흥행의 조짐을 보임에도 김창한과 온도를 맞춰주지 못하는 경영진과의 갈등, 온갖 감정에 웅크린 김창한이 <슈독>을 읽고 어린아이처럼 운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배틀그라운드가 흥행하기 직전까지 회사가 오늘내일하고 있었다는 점이 나에게 너무나도 극적이게 느껴졌다.

배틀그라운드가 출시된 연합군 이후 파트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테라 이전의 6인의 창업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크래프톤이 존재할 수 있었다.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스티브 잡스가 졸업사에서 연설한 connecting the dots를 떠올릴 수 있었다. 크래프톤이 지금까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수없이 많은 프로젝트들을 엎고, 구조조정을 하고, 내부 분열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살아남아 그 점들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살짝 결과론적). 사실 크래프톤 웨이를 읽기 전까지는 게임 업계가 이렇게까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분야인지 몰랐었다. 넓게 보면 창업 자체가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엔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